2010년 6월 6일

오늘 같이 내가 죽는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날에는 그리고 그 밤에는 비가 왔으면 좋겠다.

 

한밤중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는 내가 독기에 가득 차있었던 날들도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 주었었기에 오늘 같은 날에도 나는 “비가 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조금 더 슬퍼져도 되는 날이고

 

비가 오늘 날에는 조금 더 소리 내어 울어도 되는 날이니까.

 

더 이상 흐느껴 울 필요가 없는 날이니까.

 

‘비가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 악마였다.

 

다만 인간을 사랑한 악마였기에 벌을 받고 인간이 되어 인간의 추악한 면과 고통들의 면모만을 보는 형벌을 받고 있다.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더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형벌의 수단이다. 하지만 난 그러한 행복마저도 감사하게 느끼며 스물 네 번의 높은 달이 뜬 날들 동안 행복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웃으며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나는 더 행복해 지고 지금 보다 더 불행을 느낄 것이다.

 

다시 손발이 마비되고 이성을 잃을 것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겠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그 날이 오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자.

 

너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아끼자.

 

그래야 나를 지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지긋지긋한 형벌을 조금이나마 감형 받을 수 있다.

 

 

 

2010년 6월 5일. 나는 ASO 판정을 받았다.

 

2004년 11월 16일 수능일 새벽. 쓰러짐

 

2004년 여름. 전신 마비

 

2004년 8월 9일.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2003년 여름. 교통사고

 

 

그냥 이러한 일들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의학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다시 점점 죽어가고 있다.

 

이제 다시 지옥의 시작이다.

 

힘내자